[마켓인사이트]국민연금 헐어 일산대교 통행료 낮추자는 정치권

입력 2021-02-18 17:33   수정 2021-02-20 12:33

≪이 기사는 02월18일(05:0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이 2009년 인수한 일산대교를 두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지역 정치권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민자 사회간접자본(SOC)투자에서 안정적 수익 확보를 위해 이뤄진 대출 구조가 통행료 인하를 가로막고 있다는 정치권의 공세가 이어지면서다.

투자업계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헐어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려는 지역 정치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투자 유치 이후 손실이 계속되자 정상적인 투자를 '고리대금업'으로 비판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국내 인프라 시장의 신뢰도를 낮추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등 정치권 공세에 일산대교 재구조화 착수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와 일산대교 사업재구조화 관련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역 정치권으로부터 국민연금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일산대교 운영사 일산대교㈜로부터 연 8~20%에 달하는 대출 이자를 수취해 통행료가 타 민자도로에 비해 비싸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다. 이 지사는 지난 15일 열린 현장간담회에서 "한강 다리 중 유일하게 통행료를 낸다는 것은 너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을 가로질러 고양시와 김포시를 연결하는 길이 1.84㎞의 일산대교는 민간투자를 통해 2008년 5월 개통했다. 민자 개발이 이뤄진 유일한 한강 교량이다. 국민연금은 일산대교 민자 사업자인 5개 건설사로부터 2009년 일산대교 지분 100%를 인수했다.



지분 인수를 포함해 선순위 및 후순위 대출에 투입한 자금은 총 2755억원이다. 국민연금은 일산대교를 경기도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2038년까지 30년 간의 유료 운영권과 협약 상의 추정 운영수입을 보전해주는 MRG(최소운영수입보장)를 확보했다. 당시 연간 목표수익률은 8%로 설정했다.

민자 사업인만큼 통행료가 부과됐고, 통행료는 차량의 크기에 따라 600~2400원이 부과된다. 일반 승용차 통행료인 1200원을 기준으로 하면 1㎞당 652원으로 1㎞당 100~200원 수준인 타 민자도로에 비해 높은 수준이란 것이 지역 정치권의 주장이다.

지역 정치권은 높은 통행료의 원인을 1600억원 수준으로 이뤄진 국민연금의 대출에서 찾고 있다. 국민연금이 자신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일산대교㈜에 연 8% 수준의 선순위대출(1250억원)과 2014년부터 20%씩 적용되고 있는 후순위대출(360억원)을 실행함으로써 연간 160억~170억원에 달하는 이자 수입을 수취하고, 7% 안팎의 수익률을 맞춰주다보니 연간 40억~50억원의 MRG 보전금이 경기도민이 낸 세금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투자 업계선 정치권이 정상적인 민자 투자 구조를 부당하게 매도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지분 투자와 함께 선순위·후순위 대출을 실행하는 것은 30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운영권을 부여 받아 매년 운영권을 상각해 안정적인 배당이 어려운 민자투자사업에서 일반적인 투자 방식이다. 매년 불확실한 배당 수입 대신 원리금 상환 방식으로 투자자가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고안된 자금 조달 형태다.

일산대교에 2755억원을 투자한 국민연금이 현재 확보 중인 연간 수익률은 약 7%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200억원 가량 수익을 내야 하는 것으로, 수익의 상당부분을 대출 원리금으로 회수하고 나머지는 MRG를 통해 보전 받는 셈이다. 한 증권사 인프라 투자 담당자는 "민자 투자 사업에서 대출은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투자금 대비 수익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후순위 대출 금리만 갖고 투자자에 고리대금업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억지"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국민연금은 "실시협약 상 정해진 적정 이자율 범위 내에서 투자수익을 회수하고 있다"며 "통행료는 투자자 수익과 무관하게 주무관청이 심의해 결정되는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업계, "뭘 해도 조삼모사...반시장적 행태로 정부 신뢰 잃을 것"

경기도는 낮아진 현재의 금리 환경에 맞춰 사업을 재구조화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어떤 식의 결론이든 경기도가 제 값을 주고 전체를 인수하는 방안 외엔 '조삼모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일산대교의 통행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 MRG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수익성이 높아지지 않는 한 어느 한 쪽의 희생 없이 통행료를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이 요구하는 것처럼 국민연금이 일방적으로 이자율을 낮추는 식의 사업재구조화는 결국 국민연금이 이미 확보한 수익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용자들의 편익을 위해 사실상 국민 전체의 노후자금에 손실을 입히는 셈이다.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은 국민연금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법적 하자 없이 이뤄진 계약을 깨고 스스로 수익률을 낮추는 것은 향후 배임 시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선 다른 민자 사업 사례와 같이 대출 이자율을 낮추는 대신 운영 기간을 늘려 장기적으로 수익을 맞추는 방안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국민연금이 투자에 참여한 또 다른 민자 SOC사업인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서울외곽순환도로)의 경우 2018년 재구조화를 통해 민자 법인의 운영기간을 20년 연장하는 방식으로 통행료 인하를 이끌어낸 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는 뚜렷하다. 당장의 통행료를 낮출 순 있지만 시민들이 일반 재정도로 수준으로 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20년 늦춰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한 기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주인이 없어 조금 건드려도 티가 안나는 국민연금을 헐어 자신들 표 얻기에 활용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제 값을 주고 일산대교를 경기도가 인수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지만, 그 모든 것도 세금"이라고 말했다.

투자 업계선 문재인 정부 들어 이뤄진 유료도로법 개정, 사업재구조화를 통한 통행료 인하 압박과 일산대교 논란 등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공격이 가뜩이나 위축된 민자 SOC투자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9년 민간투자사업 투자 규모는 3조 6000억원으로 10조원에 육박했던 2000년대 후반에 비해 크게 줄었다.

2017년 말 정부와 국회는 실시협약 당시 예측한 통행량과 30% 이상 간격이 벌어지는 경우 관리청이 일방적으로 실시협약을 변경할 수 있도록 유료도로법을 개정했다. 국가·지자체와 민간 사업자 간의 계약을 정부가 사정에 따라 바꿀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정부는 2018년부터 전국의 주요 민자도로 등 민간투자사업 재구조화를 통한 통행료 인하를 정책적으로 추진 중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상적 계약마저 무너뜨리는 행태가 계속된다면 정부의 신뢰도도 떨어질 것"이라며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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